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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의 짧은 생각

대학원 진학이 고민될 때

by 율생공 2024. 7. 6.

  저는 연구실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참 드라마틱한 일들을 겪어서..  그 소문 때문인지 많은 후배님들이 대학원 진학 전에 제게 상담을 부탁하곤 했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대학원을 꼭 가야할 이유가 있는지, 나쁜 랩들을 어떻게 거르는 지였습니다. 그 두 가지를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진학을 해야할까?

  1. 제 생각엔 대학원이 무얼 하는 곳인지를 아는 게 제일 먼저인 것 같습니다. 

  많은 친구들, 후배들이 대학교와 고등학교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을 했습니다.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특히 이공계일수록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은 대학교(학부)랑 정말 많이 다릅니다. 대학원은 누군가 만들어놓지 않은 새로운 것을, 학문적+논리적 토대에 맞추어 구현해 내는 곳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비전 기반의 자동화된 검사 장치를 개발하는 것이 석사과정 연구 주제였습니다. 경험으로 비추어보면, 교수님께서는 머신러닝 전공자가 아니었지만 제가 해내야 하는 일은 머신러닝으로만 가능한 일이었기에 교수님께서 지도해주실 수 없는 모든 부분은 제가 스스로 공부해서 구현해야했습니다. 심지어 교수님은 제 연구방향에 회의적이셔서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도 설득해야했습니다. 기계과를 전공한 제가, 기계과를 전공한 교수님께 머신러닝을 이용한 비전시스템을 도입하는 이유를 설명해야하는 난관을 석사를 시작하는 첫 주에 겪었고 그 이후로도 저도 잘 모르는 내용을 공부해서 교수님께 알려드려야 하는 상황이 줄곧 반복됐습니다. 이런 과정을 제가 못버틸 만큼 싫어했다면(사실 싫긴 합니다) 석사를 진학한 것을 후회하고 힘들어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지식을 익히는 것을 싫어한다면,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매뉴얼대로 배우는 방식만을 선호한다면 대학원 진학은 별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틀렸거나 안좋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2. 두 번째로는 대학원을 가는 목적입니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석/박사가 되는데, 진로의 방향이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예륻 들어서 학부때 기계공학과를 졸업하면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진로를 개척할 수 있습니다. 동역학-제어/기구설계, 고체역학-응력해석/설계, 열역학-방열설계/해석 등등으로요. 사실 업무와 직결되는 직무 경험을 학부수준에서 쌓기는 어렵기 때문에 전공만 맞다면 관련 있는 직무에는 다 지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을 진학하면 조금 달라집니다. 자신이 연구해온 경험과 전혀 다른 길을 가기 어렵기 때문에 학사로 취업하는 것보다 폭은 더 좁아집니다. 특히 박사가 되면 연구를 하는 것, 그리고 연구를 하게 될 분야와 평생 함께 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평생 해도 될만큼 이 일이 좋은지 특히 박사를 하기 전에는 꼭 고민해봐야하는 것 같습니다.

 

나쁜 연구실 거르기

  저는 다음의 세 가지를 주로 권했습니다.

  1. 자대생의 비율
  2. 석/박사의 비율
  3. 졸업생들의 진로

  자대생의 비율: 교수님들 입장에선 같은 조건이라면 타 대학의 학생을 뽑을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융복합 연구를 위해 다른 전공의 학생이 필요한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대생의 비율이 많이 낮은 곳은 인기가 없는 연구실일 가능성이 큽니다. 인기가 없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부분 심각한 이유가 있습니다. (교수님의 인성문제, 학생 지도/진로 문제, 연구실 분위기와 내부 파벌문제, 실적 가로채기 등등)

  석/박사의 비율: 제가 처음으로 가본 연구실은 이상하리만큼 석사과정 학생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뒤늦게 알게된 것은, 애초에 석사과정은 거의 뽑질 않았고, 졸업이 늦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박사과정만 8년째 하고계신 분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 교수님들은 대학원생의 진로와 병역문제를 쥐고 있기 때문에(박사는 취업할 때 교수님께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 반드시 물어봅니다), 부당한 이유로 졸업이 밀리더라도 저항하기가 어렵습니다. 졸업이 밀리는 것이 개인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는건 나에게도 닥쳐올 일이라는 것입니다.

  신생랩이라면 예외이지만 졸업한 학생들이 어디에 취업했는지, 어디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연구실이 꽤 오래됐는데도 Alumni 란에 본인이 관심을 가질만한 기업이나 연구소가 없다면 다른 연구실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이 외에도 다양합니다. 김박사넷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는데, 저는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 연구실에서 좋은 학생을 받기 위해 실제보다 내용을 과장하여 포장하는 경우도 꽤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김박사넷에서 나쁘다고 한 연구실은, 대학원생이 큰 용기를 갖고 나쁘게 쓴 것일것이기 때문에 믿어도 될 것 같습니다.) 직/간접적인 방법들을 통해 교수님의 인성과 실력, 연구실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되도록 인턴, 학부연구생 등을 해보는 것을 권하고 싶고, 그게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 연구실 대학원생이라도 메일을 보내서 궁금한것들을 물어보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연구실은 충분히 생각해보고, 알아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제가 처음 연구실을 골랐을 때, 군대도 21개월 다녀온 입장에서 아무리 안좋은 연구실이라도 석사 2년은 버틸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군대와는 달리 대학원은 버틴다고 무조건 좋은 결과가 나오지도 않습니다. 지옥같은 곳에서 몇년을 지내서 석/박사가 되었는데 아무런 성과 없이 졸업해 갈곳이 없다면, 마음은 지치고 취업할 곳은 없고 시간과 돈은 많이 들였고..  더 큰 비극 같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연구실에서 겪었던, 그만 둘 수밖에 없게 만든 6개월의 시간은 강력한 트라우마가 되어서 다른 곳에서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를 진학한 지금에도 가끔씩 생각나 마음이 괴롭습니다. 졸업 한 학기 밀리는 것, 진학 한 학기 밀리는 것 생각보다 큰 일이 아닙니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좋은 연구실을 결정해서 진학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